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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이야기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시어머니보다 남편 쪽에 먼저 열이 받았습니다. 새벽부터 물 긷고 밥 짓는 며느리 옆에서 아무 말 못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거든요. 말 못 하는 설움, 차별받는 밥상, 눈물조차 닦지 못하는 손. 이 이야기가 조선 시대 며느리 얘기인데도 제 안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줄거리
주인공 '소담'은 시집온 지 3년이 되도록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엄격한 시어머니 밑에서 궂은일을 도맡으며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시어머니는 소담에게 몹시 무거운 짐이 든 보따리를 지워 산마루 소나무 아래로 보내며, 그곳에서만 보따리를 풀어보라고 지시합니다. 산마루에서 소담은 병석에 누워있던 친정 어머니와 극적으로 재회합니다. 시어머니가 보낸 보따리에는 쌀밥과 고기 반찬뿐만 아니라, 친정 어머니의 약을 지어드리기 위한 가락지와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소담의 친정 어머니를 돕기 위해 며느리를 산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깨달은 소담은 빈 지게로 돌아갈 수 없어 무리하게 나무를 잔뜩 해오다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갈등을 해소합니다. 시어머니는 사경을 헤맨 소담을 극진히 간호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이후 소담을 '며느리'가 아닌 '아가'라 부르며 친딸처럼 따뜻하게 대하기 시작합니다.
무언의 사랑 — 말 없는 사람이 더 크게 움직일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장면이 이 이야기에 나오냐고요? 거의 없습니다. 새벽에 물 조금 엎질렀다고 "늙은이 얼어 죽으란 말이냐"라고 면박을 주는 사람이 시어머니입니다. 처음엔 저도 이 사람 참 독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가 흉년에 곡간 열쇠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곡간이란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그 집안의 생존 그 자체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던 시절, 곡간의 마지막 쌀을 건드린다는 건 가장 귀한 것을 내어준다는 뜻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거기서 쌀밥을 짓고, 고기반찬을 넣고, 금가락지까지 목함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병환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매년 산 중턱에서 딸을 기다리는 친정어머니가 있다는 것도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그냥 "고개 넘거든 이 짐을 지고 가라, 산마루 늙은 소나무 아래서만 풀어라"가 전부였습니다.
저도 겪어봤는데, 다정한 말을 못 하는 사람이 꼭 냉정한 마음을 가진 건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도 표현이 서툰 분이셨는데, 그게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받고 자랐기 때문이었더라고요. 시어머니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젊은 시절에 다정한 말 한마디 못 들어봤으니, 다정하게 말하는 법을 몰랐던 거겠지요.
- 곡간 열쇠: 집안에서 가장 귀한 것을 지키는 물건, 시어머니의 전권 상징
- 금가락지: 흉년에도 처방이 가능하도록 약값을 마련해 준 시어머니의 배려
- 쪽지 한 장: "이 가락지 팔아 약 지어들려라" —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준 사랑
며느리 설움 — 이름도 없이 3년을 산다는 것
시집온 지 3년, 소담은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습니다. 칭찬도 없었습니다. 그냥 "며느리"였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유독 분개했던 건 사실 제 경험이 겹쳐서입니다.
저도 어릴 때 같은 집에서 다른 밥상을 받았습니다. 남동생 도시락엔 아침에 한 돈까스와 제육볶음이 들어갔고, 제 도시락엔 엊저녁 먹다 남은 미역줄거리와 김치였습니다. 남동생이 어쩌다 설거지 한 번 하면 칭찬이 쏟아졌고, 저는 매일 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소담이 부엌 한 구석에서 혼자 식은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장면이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사회학적으로 이걸 역할 고정화(role fix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역할 고정화란 특정 성별이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당연한 것'으로 굳어지면서, 그것을 수행해도 보상이 없고 못 하면 비난받는 구조를 말합니다(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소담의 이야기는 수백 년 전 설화지만, 이 구조는 지금도 낯설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편. 저는 이 남편이 제일 답답했습니다. 시어머니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아내가 새벽에 물 긷는 것도, 부엌에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장작을 직접 구해와야 하는 것도 그냥 두는 남편. 돈이라도 잘 벌어왔으면 희멀건 죽 대신 뭐라도 먹였을 거 아닌가요. 심지어 땔감도 아내가 구해와야 하다니, 하는 일이 뭔지 제가 다 답답했습니다.
고부관계 — 무너지는 데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손 하나
소담이 쓰러졌을 때, 시어머니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뛰어나왔습니다. "이 미련한 것사"라고 했지만, 그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를 안방으로 데려다 눕히고 며칠 밤을 지새웠습니다. 평생 한 번도 들이지 않던 안방으로요.
이 장면에서 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고부갈등(姑婦葛藤), 즉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심리적 긴장 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가족 구조 안에서 반복적으로 연구된 주제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세대 간 경쟁(intergenerational competition)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세대 간 경쟁이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들/남편이라는 한 남성에 대한 관계에서 무의식적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바꾼 건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가난에 찌들어 살다 보니 마음이 옹졸해져서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줬다"라고. 이 한마디가 3년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사과는 보통 약한 사람이 먼저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먼저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 더 단단한 사람입니다. 시어머니는 평생을 독하게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며느리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것도 투박한 방식으로, 하지만 진심으로.
이야기 마지막,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가"라고 불렀습니다. 3년 만에 처음 이름 대신 불린 호칭. 그날 이후 그 집에서는 며느리 대신 딸이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관계가 변하는 데 필요한 건 긴 설명이 아니라, 손 하나, 눈물 한 방울이었던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어머니가 처음부터 며느리를 아꼈다면 왜 그렇게 대했나요?
A. 제 생각엔 아끼는 마음과 표현하는 방식은 별개입니다. 시어머니 본인도 다정한 말 한마디 못 듣고 자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가 받아본 방식대로밖에 줄 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마음은 크게 움직이면서도 말은 여전히 투박했던 겁니다. 무거운 목함에 담긴 금가락지와 쌀밥이 그 마음의 실체였습니다.
Q. 소담이 짐을 열어보지 않은 게 진짜 가능한 일인가요?
A. 저도 솔직히 처음엔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소담은 이미 3년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견뎌내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열어보고 싶었지만 열면 시험에 드는 것 같아 손을 거뒀다는 장면이 그 심리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순종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었던 거지요.
Q. 고부관계가 나빠지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A. 제 경험상 가장 큰 원인은 서로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잘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못 했고, 며느리는 인정받고 싶었지만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감정 억압(emotional suppression)이라 하는데, 억눌린 감정이 쌓이면 작은 일에도 폭발하게 됩니다. 먼저 말문을 여는 쪽이 결국 관계를 바꿉니다.
Q. 이야기 속 남편은 왜 아무것도 안 했나요?
A. 이게 저는 제일 답답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앞에서의 아들 역할과 아내 곁에서의 남편 역할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 한 거겠지요. 이런 역할 갈등(role conflict)은 가족 내 권력 구조가 명확할수록 더 심해집니다. 쉽게 말해, 어머니의 눈치가 워낙 셌기 때문에 중간에 낀 남편은 침묵을 택했던 겁니다. 그게 결과적으로 아내를 더 고립시켰고요.
결론
이 이야기가 감동적인 건 시어머니가 갑자기 좋은 사람으로 변해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 마음이 있었는데 표현할 줄 몰랐고, 며느리는 그걸 알 방법이 없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리 무거운 목함을 지고 산을 오르더라도요.
저는 지금 원가족과 몸도 마음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동생과 저를 비교하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거리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제야 엄마도 그렇게밖에 못 했던 이유가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아가"라고 부르던 그 장면처럼, 관계는 어느 순간 한마디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한마디를 먼저 건넬 용기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